본 글은 09년 5월 25일자 가톨릭 서울 주보 3면에 실린 방송작가이신 이금주 벨라뎃다 님의 글을 옮긴 것 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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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아빠는요?”“조용히 해. 주무셔.”
인상을 쓰며 책가방을 들고 나온 아들은 닫힌 안방 문과 현관에 놓인 아빠 구두를 번갈아 본 후 식탁 앞에 앉습니다.“ 두 시
에 들어오셨어. 어서 먹어.”나직이 부연하는 엄마 말에 중3 아들은 숟가락을 듭니다.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밥을
먹는 아들을 훔쳐보며 여자는 가슴을 쓸어내립니다. 밤 한 시까지 아빠를 기다리며 분개하는 아들을 간신히 달래 먼
저 자게 했었습니다. 돈은 많이 버는 대신 연락 없이 안 들 어오기가 보통인 아빠에게 아들은 폭발 직전입니다. 화가
나면 살림을 부순 후 새로 바꾸는 남편 성미를 건들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. 아들은 바보같이 암말도 안 하니까 그러
는 거 아니냐며 차라리 엄마가 집을 나가라는 처방을 했습니다. 동생도 자기가 잘 챙길 테니 아빠가 빌 때까지 뭔가
를 보여줘야 한답니다. 여자는 아빠가 돈 버느라 힘들어서 그런 거니까 이해해야 한다며 간신히 달랬습니다. 행여 자
기 대신 아들이 한바탕하고 집을 나갈까봐 조마조마합니다. 이제는 남편에 아들 비위까지 쌍으로 맞추느라 더 힘들
어졌습니다.
“우리 아들 파이팅!”아들은 신발을 신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. 동시에 현관문이 열리고 남편이 들어섭니다. 아들
은 양복 차림인 아빠를 한번 보고 당황한 엄마를 봅니다. 자기 발 옆에 놓인 아빠 구두를 다시 본 후 그대로 아빠를
밀치고 뛰쳐나갑니다.“ 저 녀석 왜 저러는 거야?”남편은 따라 그 구두를 한번 보고 여자를 봅니다.“ 내 말 안 들려?”
여자는 참담한 얼굴 그대로 고개를 숙입니다. 남편은 거실 한복판에 굳은 듯 서 있습니다. 여자도 여전
히 그 자리에 꼼짝도 않고 있습니다. 소리 없이 눈물만 떨어뜨리고 있습니다. 한참을 두 사람이 그렇게 서 있습니다.
친구 남편이 눈물을 흘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. 다만 그 후로 전화 없이 늦거나 안 들어오는 일은 없어졌다고 합니
다. 평소 아들과 같은 처방을 하며 대놓고 답답해하던 내가 말문을 닫은 건 친구가 아이를 낳은 적이 없다는 걸 알고서
입니다.
“친엄마도 못 참고 나갔어. 내가 또 나가 버리면 아이들은 어떻게 해. 저런 아빠에게 두고. 다른 여자가 와도 못 참을
건데.”바보같이 산 덕에 잘 키워 시집장가도 보냈습니다. 아, 그리고 남편도 살림 부수는 건 그만두었다고 합니다.
어디에도 평안한 삶은 없는 것 같습니다. 자주 막막하고 매번 힘들고 가끔씩 행복한 우리는 사랑이 희망입니다. 내
잘못을 사랑으로 용서해주시는 하느님처럼 나도 그렇게 흉내라도 내보고 싶습니다. 하느님께 거저 받은 사랑을 누
군가에게 되돌려 줄 수 있는 그릇이 되기를 기도합니다.